마크 로스코 Mark Rothko 색면추상

금수강산 0 7,791 2011.11.14 10:49


최근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화 작품이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는데, 단지 그 한 작품만 보면
우스갯 소리로 '나도 저런 그림은 그리리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도 상당수 있으리라 짐작된다.
고로 , 그런 분들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돕고자 '마크 로스코'의 예술 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잭슨 폴록과 함께 20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던,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마크 로스코는
1903년 러시아 빈스크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났다.
로스코는 10살되던 해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갔으나 이듬해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는 불우한 유년을 보냈다.

훗날 예일대학에 입학했으나, 당시 미국의 반유태주의 물결로 인해 장학금은 취소되고 결국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고 만다.
그는 원래 목표했던 기술자나 변호사를 포기하고 뉴욕으로 이주해 그림을 시작했으며 독학으로 화가가 되었다.

마크 로스코의 1920~30년대는 표현적인 터치로 풍경과 인물을 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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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te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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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1940년대는 초현실주의에 관심을 가지면서 신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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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
이 작품은 로스코가 고립된 현대인의 모습을 담았다고 하나, 당시 그는 프랑스의 조각가
쟈코메티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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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



1947년 이후 그는 그림의 제목을 붙이는데 있어 기존 방식 대신에 숫자나 색깔로 작품을 표시했는데, 그 이유는 단어의 의미가 관객의 마음과 상상을 마비시키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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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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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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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

1950년대는 로스코의 모든 회화가 색면으로 표현되는 절대 변화기다.


그는 캔버스 위에 색채를 칠한후 계란을 바르고 마르면 물감을 또 칠하고 그 위에 오일을 바른후 색채를 덧입히는 행위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렇게 나온 사각형의 색면은 빛을 발하면서도 깊이 있는 내면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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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그는 인간의 감성문제, 즉 인간적 고뇌나 비극, 희열, 그리고 운명 등을 그의 그림에서 표현하고자 했으며, 사람들과 함께 종교적 체험까지 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로스코의 회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실존의 비극과 이것을 이겨내는 숭고한 정신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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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이작품은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즈음의 로스코는 어머니의 죽음과 자신의 건강상 문제등으로 인한 심한 우울증으로 상당히 어려웠던 시기였다.
로스코의 작품은 말년으로 갈수록 화면은 점점 어두워져 갔고 암울하고 사색적이며 절제된 작품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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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 종이에 수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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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

이후 비극과 환희, 파멸 등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색채로 표현하는데 점점 빠져든 그는 1970년 끝내 자살로 57년의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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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 캔버스에 아크릴
이 그림은 미완으로 남겨둔 것으로 로스코의 붓질이나 색상을 선명하게 볼수 있다.


붓 대신 스펀지를 사용하기도 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단순하지만 신비스런 느낌을 준다는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유화 900여점, 파악된 종이 작품만 2천500여점이라는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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